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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그 녀석(들)이 그림이 되어 공간으로 들어와 말을 건다.

                          신보슬 (큐레이터)

 

#1.
독일의 어느 변두리 길을 걷다 보면 그 녀석을 만난다. 아주 단단해 보인다. 웬만한 비바람에 도 끄떡없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구도 그 녀석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저 거기 그렇게 있 을 뿐, 있으나 눈에 띄지 않고, 눈에 띄지 않기에는 꽤 큰 녀석인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쓰레기 ‘통’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거대한 녀석. 하지만, 그 녀석은 결국 쓰레기통이다. 일상 의 쓰레기를 담던, 건축현장의 폐자재를 담던, 나보다 한 참 큰 그 녀석은 결국 쓰레기통이다.

(<컨테이너> 시리즈)

#2.
단박에 알았다. 이 녀석은 문이다. 어느 동네에 있는 어떤 건물에 있는 문인지는 알 수 없지 만, 번호가 써진 것을 보니 아마도 창고의 문일지 모르겠다. 그래피티의 흔적도 보인다. 변두 리 어디에선가 온 녀석인 것 같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도시 귀퉁이의 창고의 허름한 문이 다.

(<게이트> 시리즈)

#3.
이 녀석도, 문인 것 같기는 한데, 다른 문이다. 여기저기 스티커가 붙어 있고, 색이 바랜 걸 보니 길거리에 있는 어떤 장치의 문인 듯하다. 열쇠구멍도 있다. 배전통의 문인 것 같기도 하 고, 아니다. 문 위에 쓴 푯말을 보니 소화전의 문인 것 같기도 하다. 지나면서 수십 번 수백 번 보았겠지만,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녀석이다.

이 녀석들은 모두 권혜경의 그림에서 만났다. 그림이 되기 전에는 거리에 있던 녀석들이다. 벽이고, 문이고, 쓰레기통이고, 컨테이너고. 화재경보기이고, 경고문이고, 도로 표지판이다. 다 들 다른 녀석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주목받지 못하는 녀석들이라는 것. 도시가 굴 러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당당히 도시를 구성하는 녀석들이지만, 사람들은 스쳐지 날 뿐 주목해서 보지 않는다. 어떤 모양이고, 어떤 색깔이며,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살피 지 않는다. 일상에 늘 있던 녀석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아무도 보지 않았던 녀석들에 권혜경의 시선이 닿았다.

이렇게 그/녀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을 그린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을 ‘일상에 대한 그 림’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왠지 컨테이너를, 쓰레기통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그 녀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녀가 선택하여 캔버스로 옮긴 사물들은 그저 우연히 작가의 눈에 띤 사물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물에 대한 그림이라면 ‘정물’이라 해야 할 텐데, 녀석들의 그림 앞에 서면 자꾸 마음이 반응한다.

그/녀가 그린 녀석들은 사실 그/녀였다. 사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그녀의 ‘사 물’들이 그저 사물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휙휙 거침없어 보이는 붓자국이나 스프레이의 흔적이 왠지 그녀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어쩌면 쓰레기통이던 컨테이너건 상관없었을지 모른다. 길거리에서 발견한 테이프 한 조각이었으면 어떠랴.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 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투영, 그것이 바로 그녀의 사물이었다.

일상에서 찾아 낸 녀석들이 그/녀의 캔버스에서는 주인공이 된다. 화면 가득, 그 어떤 다른 정보도 없이 오롯이 그 녀석들만 존재한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모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는 듯 그 모습 그대로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 녀석들이 있던 곳에서는 한없이 작 아보이던 녀석들이 당당히 그림 속 주인공이 된다.

권혜경의 말을 빌자면, 자신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작가라고 했다. 그래서 2016년 독일 에서 한국으로 거점을 옮기면서 작업에도 변화가 왔다고 했다. 독일에서 찾아낸 녀석들이 감 정이입이 많이 되었던 것이라면,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일상에서 ‘우연히’ 발견된 녀석들이라는 것이었다. 사진으로 찍어서 이리저리 구성도 해본다고 했다. 짐작컨대 바삐 돌아가는 한국사 회에 적응해 살아가면서 그 녀석들에게 마음 줄 여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동시에 자신의 감정 을 깊숙이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을 수도 아니 보기 싫었을 수도 있다.

문득 어쩌면 이런 일련의 변화들은 어쩌면 환경의 변화 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었다.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전달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계. 다른 많은 회화 작가들이 그렇듯, 자신이 느낀 것을 전달하는데 평면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동시대 미술에서의 회화에 대한 위치와 회의감으로부터 디스플레이에서의 방법론을 고민하게 되었다 고 했을 때 수긍이 갔다. 벽에 벽의 그림을 걸고, 창이 있을 법한 곳에 창 그림을 걸었다. 바 닥에 차곡차곡 팔레트 그림을 쌓았고, 뒤에 있는 그림이 보이지 앞에 그림을 포개기도 하였 다. 마치 무대 장치처럼 그림 뒤에 버팀목을 붙여서 전시장 공간 안에 세우기도 하였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것’에서 그림들 사이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이야기는 비선 형적인 구조로 펼쳐지고 있다. 그/녀가 말하듯 개별 작품은 ‘유닛’이 되어 전시마다 조금씩 다 른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유일한 방 식보다는 다양한 감상의 여지들이 생겼지만, 공간을 어떻게 바꾸어도 여전히 공간의 주인은 그림이었다.

그림은 그림만의 힘이 있다. 뭐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붓질과 색감과 방식이 전하는 특유의 전달방식이 있다.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닿게 되는 길이 있 다. 그래서 그림은 종종 그 어떤 설치보다 파워풀하고 감동적이다. 권혜경의 그림을 처음 보 았을 때, 그럴싸한 개념어나 설명이 없어도, 마음으로 훅 닿는 느낌이 전해졌다. 전시장도 아 닌 작업실 귀퉁이에 놓인 상태였지만 충분했다.

to be continued.
가운데가 텅 비어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그 곳에는 물탱크가 있었다고 했다. 왜소한 작가의 몸에 비해 엄청 크게 보였던 캔버스. 그 위에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그려간다. 전시장에 들어 설 때면 그 옆에 다른 녀석들이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는 완결될 것이고, 그렇 게 작가의 마음은 전해질 것이다.

 

 

2018

A Letter to the Painter

Dear Hye Kyoung,

In September 2013 I got to know you in an artist residency in Berlin. At the time you were a postgraduate student (Meisterschuelerin) at the Academy of Fine Arts Saar, Saarbruecken, Germany. It was the 4th year you lived in the small city and you wanted to move to Berlin.
In the beginning, I was impressed by the things you brought to fill the 25 square metre studio – the utensils, the laser printer, the vacuum machine, the brushes, dozens of cans of paints, empty or half painted canvases. Maybe the studio was too small for you. Compared to what you have, I was just a tourist with a backpack and luggage. You are a studio artist.

The studio is an extension of your mind. I would not try to knock the door of your studio while you are working inside. It trespasses an artist’s most private zone. Unfortunately, you move a lot to carry on your artistic life, sometimes with honour, sometimes for necessity, left in memory. This is your 7th studio. One could imagine how painful you were to relocate, again and again, let alone dozens of oversized paintings, each measuring 2-3 meters wide and high. I have not met many artists as desperate as you. No matter how little space it left, you produce. It touches your nerve when you couldn’t. Despite the pain of moving, you seem motivated by fatigue and inspired by the chaos brought to you by the new environment. As an artist nowadays, you are not an opportunist nor a fame seeker. This is also not about patience. This is a preoccupation with the admirable objects you created. For days and nights, your indulgence stops you from looking away. I see gradual but solid progress. You strive for a breakthrough.

It is natural for you to put up this exhibition. The taped parcel boxes, the packaging carton, the palette, the corner protectors and the tents just happened to appear in your daily routine. Raw materials are ordered and delivered to your studio. You process and transform them into works of art. The artworks are then distributed to different exhibition venues and back to your studio again. As an experienced art mover, you also try very hard to move yourself and the audience. For the painted objects and scenes are the traces of your studio life, I see the finest emotion in your solitude time, ina space that you are truly free, in the Memory Distribution Center.

Sincerely yours,
Silas Fong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친애하는 혜경에게,

나는 당신을 2013년 9월 베를린에 있는 예술가 레시던시에서 알게 되었어요. 그 당시, 당신은 독일 자르 조형예술대에서 마이스터과정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지요. 작은 도시에 4년 동안 살았고, 베를린으로 이사하기를 원했어요. 당시, 25m²(7.5평 남짓한) 스튜디오를 채우기 위해 당신이 가지고 온 식기 도구, 레이저 프린터, 청소기, 붓, 수십 개의 물감, 페인트통과 비어 있거나 반쯤 칠한 캔버스들을 보며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지요. 그 스튜디오는 아마 당신에게 너무 작았을 거예요. 당신이 가지고 온 것들에 비교했을 때, 나는 단지 배낭과 여행용 가방만 가진 관광객일 뿐이었어요. 당신은 진정한 스튜디오 작가예요.

스튜디오는 당신이 가진 생각의 확장이었어요. 당신이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동안, 나는 되도록 노크를 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것은 예술가의 가장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거든요. 나는 당신이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자주 이사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영예를 위해서, 혹은 필요에 의해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지요. 저는 그러한 당신의 상황이 때로는 안타깝다고 느꼈어요. 이번이 당신의 7번째 스튜디오이군요. 폭이 2~3m가 넘는 수십 점의 커다란 캔버스를 들고 이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을 거예요. 난 당신만큼 필사적인 예술가를 거의 보지 못했어요. 아무리 공간이 작더라도 당신은 작업을 계속해서 이어갔어요. 그것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지 않았거든요. 당신은 오히려 낯선 환경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고, 새롭게 마주한 혼란 속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보였어요. 동시대에 활동하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당신은 기회주의자도 명성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당신의 작업은 인내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그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훌륭한 심취에요. 며칠 밤낮으로 이어지는 당신의 작업에 대한 몰두는 당신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지요. 나는 당신의 작업에서 점진적이지만 확실한 진보를 봤어요. 당신은 언제나 새로운 돌파구를 향해 움직이는 듯 보여요.

이번 전시는 당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테이프가 붙은 소포 상자, 포장 상자, 팔레트, 모서리 보호대 그리고 텐트 등 그냥 우연히 당신의 일상에 나타났어요. 원료는 주문되어 스튜디오로 배달되고 당신은 그것들을 예술 작품으로 변형시키지요. 그리고서 이 예술 작품들은 다른 전시 장소로 배포되고 스튜디오로 다시 돌아와요. 숙련된 예술 배송 가로써, 당신은 당신 자신과 관객의 감동을 위해서 매우 열심히 노력해요. 그려진 사물들과 당신의 스튜디오 내부의 삶의 흔적 때문에 당신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공간인 ‘기억유통센터’에서 나는 당신의 고독한 시간 안에 가장 섬세한 감정을 볼 수 있어요.

진심을 담아,
실라스 퐁

<Memory Distribution Center> 2018.11.10 – 11. 24, Gallery Chosun, Seoul <기억유통센터> 2018.11.10 – 11. 24, 갤러리 조선, 서울

 

 

2017

‘Space-painting: Symbols of a variable everyday life’
Hayoung Joo (Ph.D in intg. History of Art & Cultural Studies, and Arts, Lecturer at Sungkonghoe Univ.)

‘Object-painting: Confirming existence’
Hye Kyoung Kwon started her painting and installation work ba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a main agent and a subject with objects easily found in everyday life. The found objects were not special but very ordinary so that everyone could easily see them everywhere: a recycling bin, a container box, a fire alarm, hydrant, crosswalk, road sign or warning sign; all can be easily recognized without any explanation.
The artist first got interested in this subject during her study in Germany, and started the ‘Object-painting’ series. It applied the artist’s own situation to an object, and identified a main agent with a subject. The artist’s found objects were not special but they take their role in silence, which made them special by existing. The artist attempted to determine her place in the world and to confirm her value through those ordinary objects. In other words, the artist created an alter ego by calling for empathy to the objects in her works.

‘Unit-painting: Starting a new life’
The artist who identified a main agent with a representative subject attempted a new effort in 2016. By moving from Germany to Korea, she experienced a big change in her environment and began to look around to find a new subject. Her busy life in Korea naturally led her to have an emotional distance between a main agent and subject, and thus, the artist slowly lost affection and sympathy for the subject. Instead, she began to paint objects found when traveling in a bus or car. This passing distance with objects called for a change in her work.
The big change was in the process. The artist took photos of objects accidentally found in everyday life, and attempted to observe and analyze those prints. For example, the artist reviewed the collected images, and attempted to make a grouping, separated by category, and overlapping them to create a new form. Then she represented her experiments on canvas. In the process, she did not use a pencil or paint to make a sketch but used masking tape to place her subjects. It was much more bold, which allowed tough and simultaneous expression. As a result, the objects became a block or cube that could be combined and separated with freedom of size. The artist’s painting was thus a flexible unit or representative system that symbolized the her environment and emotional changes.

‘Space-painting: Suggestion a possibility of transformation’
Hye Kyoung Kwon’s ‘Object-painting’ has continually changed and has now been extended in the ‘Unit-painting’ and ‘Space-painting’ series. The ‘Scene’ series, in 2017, combines scenes from the same place and time like in a theatre or movie. The artist maintains her method of expression in her painting, but adds diversity in the size of the canvases and the manner of their installation. An object is sometimes placed on the represented image on canvas, and sometimes placed at a distance in order to create a new aspect of space. This unexpected space – from the artist’s pursuit of a new structure – is actually reality, which reflects our everyday life.
The relationship between a main agent and a subject has been art and philosophy’s interest for a long time. Like Alfred North Whitehead (who has an important role in the process) says, philosophy claims that a relationship between a main agent and subject is not fixed but flexible; a main agent has to repeat making a relationship with a subject in order to create its existence because it only exists in this process. In other words, there is no eternal main agent and subject. The works of Hye Kyoung Kwon also exist within the boundary of her life, in which a main agent and subject are not divided but in a relationship, organically entangled. The found objects are the fruits of her effort to find a special value in everyday life representing her struggle in life. Moreover, the artist attempts to express herself and find a way to communicate through her relationship with objects. The artist has undergone a big change with her marriage, immigration, and settlement. We all look forward to see her changes and the possibility of new work.

 

2017

공간회화’: 가변적 일상의 표상- 주하영 (문화예술학 박사,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사물-회화: 존재의 확인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물을 회화와 설치로 표현하는 권혜경의 작업은 대상과 주체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발견한 오브제는 그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함이 있기보다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사물이다. 예를 들면 재활용 쓰레기통이나 컨테이너 상자, 화재경보기, 소화전, 횡단보도, 도로 표지판, 경고문 등 대상이 무엇인지 쉽게 식별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용도가 무엇인지도 다양한 언어로 정확히 사물에 적혀있거나 부착되어 있다. 독일 유학시절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사물-회화’ 작업 시리즈는 작가가 처한 상황에 사물을 대입시켜 대상과 주체를 동일시한 작업이다. 작가가 발견한 사물들은 아주 특별하진 않지만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며 그곳에 있고, 또 없어서는 안될 오브제이기에, 작가는 이러한 평범한 대상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묻고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즉, 작가는 대상과의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를 만들며, 이를 작품으로 표출해 왔던 것이다.

단위-회화: 새로운 삶의 시작

재현 대상과 주체를 동일시했던 작가는 2016년 이후, 작품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우선, 독일에서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바꾼 작가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었고, 새로운 대상을 찾기 위해 바삐 움직이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게 되었다. 작가의 분주한 움직임과 일상은 자연스레 재현 대상과 주체 사이의 감정적 거리를 벌리게 되었고, 대상에 대한 애착과 연민은 저절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 속에서 작가는 버스나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사물들을 회화로 옮기기 시작했고, 대상과의 무심한 거리두기를 통해 작품에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우선 작업 방식의 변화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대상들을 수집하듯 사진 찍고, 이를 인화하여 다시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예를 들면, 수집된 대상들의 이미지를 나열해 본 뒤, 이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기도 하고, 분리해 보기도 하고, 또 겹쳐보기도 하면서 새로운 조형 체계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바로 캔버스에 회화 작업으로 대상들을 재현하였다. 연필이나 물감으로 스케치하는 과정 대신, 캔버스에 마스킹 테이프로 대상의 위치를 지정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이전과는 달리 대범해졌고, 대상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천천히 그리기보다는 빠른 필치로 굵고 거칠게 표현하였다. 이렇게 표현된 대상들은 하나의 변용 가능한 블록이나 큐브가 되어 접합과 분리가 가능하며, 크기와 규모에서도 자유로운 변화가 생겼다. 이제 권혜경의 회화 작업은 하나의 유동적인 단위이자 작가가 마주한 환경과 감정적 변화를 대변하는 표상 체계가 된 것이다.

공간-회화: 변용 가능성의 제안

권혜경의 ‘사물-회화’는 ‘단위-회화’로, 그리고 다시 변용 가능한 ‘공간-회화’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확장된다. 올해 들어 시작한 <장면> 시리즈는 연극이나 영화를 구성하는 극의 한 단위처럼, 동일한 장소와 같은 시간 내에서 가져온 한 장면의 모습과 이미지들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만든 작업이다. 작가는 회화로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유지하되, 캔버스의 크기와 설치 방법을 달리하였다. , 캔버스에 재현된 이미지 위에 다른 캔버스에 그려진 대상을 놓기도 하고 또 분리하기도 하면서 작품들이 인위적으로 얽혀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게 하였다. 이렇게 자유롭게 구축된 공간은 현실의 모습이자 일상의 반영이기도 하고, 새로운 구조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 삶의 방식이자 고민이기도 하다. 대상과 주체 사이의 관계는 예술과 철학의 오랜 관심사이다. 과정 철학의 중심에 있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임을 주장한 것처럼, 주체는 자신을 생성하기 위해 대상과의 관계 맺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하고, 이러한 과정에 있을 때만이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 영원한 주체도 객체도 없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권혜경이 추구한 작업도 자신의 삶의 작은 테두리를 담고 있으며, 대상과 주체가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 맺으며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발견한 오브제들은 일상에서 특별한 가치를 찾고자 한 작가의 노력이자 곧 자신을 찾고자 했던 어렵고 힘든 투쟁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또한, 작가는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통로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결혼과 이주, 정착이라는 새로운 변화와 삶의 도약을 맞은 권혜경 작가에게 이전과는 다른 작품의 가능성을 기대해 보며 더 앞으로 전진하기를 희망해 본다.

 

 

2016
unfamiliar experiences from conventional everyday life- Jungi  Gim (Art Critic)

The paintings of Hye Kyoung Kwon start from an illusion. She realistically represents objects with brushes and sprays. In this aspect, I can say her paintings have a tendency of realism in a broad sense. However, the difference is the characteristic, made from how she sees objects. The artist paints everyday objects around her. Although art embodying everyday life can be defined to be very conventional, the reason that I am mentioning that the everydayness in her paintings seems to be unique is based on the fact that how her paintings approach to audiences as a kind of an experience.

The everyday matters that the artist uses in her paintings are not ordinary subject matters like scenery, still life or portrait but trivial and conventional things that do not have specific meanings or values as a subject of painting while the honest stories based on her experiences is being added. Today’s artists, especially painters, feel oppressed as if they paint for a divine punishment. This is because the field of painting today is drifting across the pressure of narration and the compulsion of visualizing everyday life. The effective way to reduce these burdens should be embodying an artist’s experiences honestly in art but this way has been taken by many artists already so many of them often end up in their conventional monologue. Painting about everyday life must be easy and difficult at the same time.

The important point is on the value of experiences. Not only artists but also people in general live with their own experiences of everyday life because life means the repetition of experiences. However, artists should have a specific reason for dealing with experiences of everyday life, create the emotional point that shares with audiences, and communicate with them through its progress. Then, it says that talking about unfamiliar experiences can provide differentiation because audiences can discover a new event and narration that could not be thought or felt from the new viewpoint that tries to rediscover conventional events or objects of everyday life.

The paintings of the artist from her university years in Germany represent objects that she met in everyday life in Germany such as a container and a switch box. While progressing them, she changed the subject that talks about her experiences of everyday life in the unfamiliar environment, Germany, from a person to an object. Objects should be the one that she could experience fully in the unfamiliar place where she should find difficulty of communicating with people. This was an act of realizing the personal value that gives a value to an object and an act of finding a meaning from an ordinary object in everyday life. She has proved that art reflects everyday life while working as a creative artist who creates a new event beyond everyday life with imagination thoroughly through her practice.

Her interest in unfamiliarity has been continuing even after she came back to Korea. As an artist whose role is like an invisible man’s even after coming back to Korea, she has delved deeper into the job of an artist and created the series that captures the feeling of interior spaces with such parts of a window or wall, notebook, cover of a rubber basin, wooden plate, and box. This series also has started from the idea that she wants to give a value to a trifle, and understand an object, its structure and even the essence of it. In the recent paintings, there is a meaningful change, which shows that she is looking towards the outside from the inside of her studio and finding a new experience and expression.

The paintings of Hye Kyoung Kwon clearly reflect how the environment of an artist defines a direction of practice. When coming back to Korea after studying in Germany and spreading down her roots again in Korea, she participated in the Sancheong residency program and has continued meaningful works that presents how an artist gets used to a place. Her recent works especially leave a significant impression from how they draw the interior spaces and everyday life of the Sancheong residency program. Like she had deducted the concept of her practice from the unfamiliar environment of Germany, how the artist’s practice has been localized with objects of everyday life in the Sancheong residency program positively and naturally connects her previous practice with the present.

The fact that a young artist, Hye Kyoung Kwon, painted Sancheong-specific works during the Sancheong residency is surely leading her to root back to Korea firmly as an artist who can have a positive progress and result. If the artist’s point of view were defined to be digging special feelings from an ordinary event or object of everyday life, how she recollects the environment in the Sancheong residency program into her current paintings would be the decisive factor of her recent practice. The practice of Hye Kyoung Kwon reminds the life of an artist who does not have a permanent abode. In her paintings, there are neutral viewpoint on the truth, only experienced through the life of an artist, and eyes of a realist who sees life and art as transcendental matters. This is because she is the artist who draws unfamiliar experiences from conventional everyday life as I mentioned above.

 

 

 

2016

상투적인 일상으로부터의 낯선 체험- 김준기 (미술평론가)

권혜경의 회화는 일루전에서 출발한다. 그는 브러쉬와 스프레이를 사용해 사물의 형상을 사 실적으로 재현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의 회화는 넓은 의미의 리얼리즘 경향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이 일반적인 리얼리즘 회화들과 차별하는 지점은 바로 그가 바라보는 재현 대상의 특이점이다. 그는 자신이 만난 일상의 사물들을 그린다. 일상을 담는 예술은 어찌보 면 특이점이라기보다는 상투성에 가깝다. 그런데도 필자가 그의 일상성이 특이점으로 나타 난다고 언급한 것은 일반적인 일상의 예술에 비해 권혜경의 일상 회화가 같은 체험으로서의 회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권혜경이 의미를 두는 일상은 풍경이나 정물, 또는 인물과 같은 일반적인 재현대상들이 아 니라 회화의 주제로 삼기에 특별한 의미나 가치를 두지 않는 시시하고 상투적인 것들이면서 도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진솔한 자기 이야기들이다. 오늘날의 예술가들, 특히 회화 작 업을 주로 하는 예술가들은 천형과도 같은 중압감이 있다. 그들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은 거 대한 서사의 압박과 일상적 미시성의 강박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는 회화의 위치 때문이다. 이러한 부담을 떨치는 유력한 방법 중의 하나가 예술가 자신의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일인데, 이러한 태도마저도 다수의 예술가들이 취하는 것이어서 대략 상투적인 자기독백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일상성의 회화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체험의 가치에 있다. 예술가는 물론이고 일반인 모두 일상의 체험을 안고 산다. 산 다는 것은 체험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가가 일상의 체험을 다루는 데는 나름의 뚜렷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예술가의 체험을 대면하는 관람자와 감성적 공유 지점을 만들면서 공감의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상 담론이 차별화하는 유력한 방법은 낯선 체험을 담아내는 일이다. 상투적인 일상의 사건이나 사물을 낯선 시각 으로 재발견하려는 시선으로부터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 건과 서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유학시기의 작업들은 독일의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사물들을 담고 있다. 콘테이너나 배전함 등 자신이 만난 일상의 사물들이다. 그는 낯선 환경에서 만난 일상의 체험들을 풀어 나가는 소재를 사람에서 사물로 전환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낯선 곳에서 그가 체험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일상의 사물들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체험적 가치의 발현이며, 스치고 지나가버리곤 하는 흔한 사물에서 의미를 발견해내려는 태도이다. 그는 예술이 일상의 반영이면서 동시에 일상을 넘어서는 상 상력을 발휘해서 일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행위라는 점을 잘 보 여주고 있다.

한국에 귀국한 이후의 작업들도 낯섦에 대한 그의 관심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도 투 명인간 같은 위치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로서, 그는 예술가라는 직업의 특성에 천착해서 실 내 공간의 감성을 잡아내는 연작을 하고 있다. 창문이나 벽의 일부를 담거나 공책, 고무대야 뚜껑이나 나무 널판지, 상자 등을 그것이다. 이 역시 하찮은 것에 가치부여를 하고, 사물 의 현상과 구조, 그리고 본질을 파악해보고자 생각에서 나온 작업들이다. 그가 작업실 내부 로부터 조금씩 그 외부로 시선을 돌리며 새로운 체험과 표현을 찾아나가고 있다는 점 또한 근작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유의미한 변화들이다. 권혜경의 회화는 예술가가 처한 환경이 그의 작업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 다. 그는 독일 유학 이후 한국에 다시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산청에 머물면서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의 현지화 과정으로서 유의미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의 최근작들은 특히 산청의 레지던스 공간 실내와 주변부의 일상을 끌고 들어온다는 점에 주목해볼만 하다. 그 가 독일의 낯선 환경들로부터 일상의 사물 작업 개념을 도출했듯이, 산청 레지던스에서 만 난 일상의 사물들과 연관한 일련의 작업들은 창작의 현지화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자연스 럽게 연결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산청에서의 레지던스를 통하여 청춘의 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그의 작업이 산청특정적인 예술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예술가로서 권혜경이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데 매우 긍정적인 과 정과 결과를 낳고 있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일상의 사건과 사물로부터 특별한 감성을 캐 내는 것이 권혜경의 태도라고 볼 때, 그가 처한 삶의 조건, 즉 산청의 레지던스라는 공간에 펼치진 일상들을 어떻게 새로운 시선으로 환기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의 근작을 구성하는 결 정적 요소이다. 권혜경의 태도는 비정주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의 삶을 반영한다. 그의 작업에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서 주어지는 체험적 실체들을 대면하는 그의 담담한 시선 에 삶과 예술을 불이(不二)로 보는 리얼리스트의 태도가 담겨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는 상투적인 일상으로부터의 낯선 체험을 끌어내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PDF: 상투적인 일상으로부터의 낯선 체험- 김준기 (미술평론가)-  2016